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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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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미국과 쿠바의 외교관계 정상화 선언은 최근 몇 년간 가장 주목할 만한 국제뉴스였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희망한 대로 이제 양국이 과거의 족쇄를 끊어내고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길 기원한다. 쿠바의 존재는 미국이 주시한 수많은 국제적 관심사 가운데 미미한 편이었지만, 냉전시대의 과장된 공포와 긴장 탓에 위협적인 ‘테러 수출국’으로 과잉 규정되었다. 하지만 1960년 10월 미국의 금수(禁輸) 조치 이후 심각한 타격에 시달린 쿠바인들은 특히 소련 해체 뒤 ‘특별시기’에 평소 임금의 60%만 받거나 일자리가 없어 집에 머물고 영양실조와 물자 부족을 겪으며 곧 붕괴할 듯 보이는 체제를 힘겹게 유지해왔다. 피델 카스트로가 2006년 무렵 한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쿠바계 미국인들이 혁명 정부에 몰수당한 옛 재산권을 회복하고자 소송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헬름스-버튼 법이 1996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뒤 쿠바인들의 칼로리 섭취와 단백질 소비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따라서 적잖은 이들이 탈출을 감행했고 쿠바 정부는 ‘사회주의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구호 속에서도 생존에 필요한 실제적 해법을 모색해 외국인 투자자, 자국 출신 망명자, 관광객을 받아들이며 내국인들의 자영업까지 허용했다. 결핍과 고난의 행군 가운데 쿠바는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평균수명, 문자해독, 교육이수, 보건의료 수준을 성취했고 2005년 강력한 허리케인 윌마가 아바나를 강타했을 때 인상적으로 드러난 효과적인 대처와 ‘안전의 문화’는 두 달 전에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은 미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정도였다. 미국 정부로선 유럽의 모든 국가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포함해 180개국이 쿠바 봉쇄정책에 반대하는 현실과 이중 잣대 논란에 부담을 느꼈을 법하다. 또 오랜 금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2003년에 미국이 쿠바의 최대 식량 공급국이 되었다는 역설과 외부의 압박에도 카스트로 체제에 대한 쿠바인들의 지지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 등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양국의 외교관계 정상화 선언 직후 쿠바계 미국인들의 근거지인 마이애미에서는 ‘음모’ ‘테러리스트’의 영문 표기가 잘못된 팻말을 든 나이든 쿠바 출신 망명자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은 오바마가 중요한 양보를 얻어내지 못한 채 침몰하는 쿠바에 생명선을 제공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사설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50년 넘게 실패한 정책을 폐기했다고 주장할 테지만, 실제 그는 50년 넘게 실패한 정권과 생명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고 비판했다.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반대 여론을 넘어선다면 1961년 단교 이래 현실적 필요에 따라 1970년대 말 양국의 수도에 설치된 권익사무소는 곧 대사관으로 격상되고 미국 정부는 쿠바의 테러지원국 지정 재검토, 자국인의 여행과 송금 제한 완화, 통신망 확대, 금수조치 해제 등 후속조치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미국 농산물업계가 기대하듯 쿠바 수출과 수익이 늘어나고 쿠바인들은 부족한 주택을 짓는 데 필요한 건축 자재를 더 쉽게 구하게 될 것이다. 또 쿠바의 정보통신망이 개선돼 현재 세계 최저 수준인 인터넷 접속이 늘어나고 스타벅스와 맥도널드 등 유명 체인점의 개장과 더불어 높은 의료비에 시달리는 미국인들의 쿠바 의료 관광이 성사될지도 모른다. 강압과 따돌림보다 포용을 택한 세계 최강국의 대담한 결정이 새해를 맞아 빛을 보게 되길, 그리하여 4월의 제7차 미주정상회담에서 훈훈하고 열의 있는 분위기가 펼쳐지길, 그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몇 십년 전으로 후퇴하는 듯한 한반도의 현실에도 의미 있는 교훈을 남겨주길 기대한다. 박구병 아주대 사학과 교수 [2015.1.12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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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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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마을은 그 자체로 영원한 학교이자 영원한 스승이다. 그런 소중한 ‘마을’을 우린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깨알 같은 성냥갑 속에 나뉘어져 각자 잊혀진 삶을 살아오면서 마을을, 이웃을, 소중한 사람들을 망각하고 살아 왔다. 요즘 불현듯 그런 잊혀졌던 마을들이 우리 곁에 돌아오고 있다. 마을이 뭉치기 시작했다. 마을학교와 마을선생들이 곳곳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고 마을을 살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생각을 모으고 힘을 합하고 어깨를 기대며 지혜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양한 ‘마을실천학습공동체’들이 출현하고 있다. 얼마 전 ‘서로 서로 가르치고 배우려는’ 마을학습관계자들의 ‘옹기종기 포럼’ 모임이 있었고 그 곳에서 필자는 좌장의 역할을 맡아 전국적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수 많은 놀라운 마을 만들기 사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마을을 일궈 낸 코디네이터와 마을리더들은 교육전문가나 시민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일상 속 마을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마을리더로 마을선생으로 마을학교 교장으로 변신을 하고 있었다. 진하디 진한 마을 사랑으로 마을의 변화와 성장 사례들을 당당하게 발표하던 그들의 모습이 선연하다. 학습 공간의 열림을 주제로 마을의 보물 같은 자원인 필봉산 숲을 ‘살아 숨 쉬는 생태 공동체 학습의 장’으로 변신시킨 ‘문턱 없는 마을, 숲통 마을(숲으로 통하는 마을)사례’도 매우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마을 자원을 발굴하여 문화학습공동체를 일궈,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진짜 소통하는 이웃’을 만들고 싶었다는 마을코디네이터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마을 ‘카톡방’ 만해도 무려 25개나 된단다. 마을의 작은 단지와 공동주택과 타운하우스들을 학습공간으로 재구성하여 열고 풀고 트는 작업들,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소통을 위한 마을소모임과 마을공동체 모임들, 민관 거버넌스 학습마을 미래 디자인, 마을 갈등 터놓고 말하자, 아빠들의 재능 기부, 숨 쉬는 도서관, 선진마을 공부합시다, 함께 하는 마을 만들기, 게릴라 가드닝, 어린이 그림 사냥꾼들이 만든 작품 숲으로 통하는 마을 학습지도와 생태학교 등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숲통마을 4행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숲) 숲이 있는 곳으로 이사 왔더니, (통) 통 큰 아줌마들이 많더라, (마)마음도 나누고 재능도 나누니, (을)을씨년스러운 날씨도 꼼짝 못하더라 등등 마을의 보물 같은 자원들이 별처럼 쏟아져 나오는 ‘온 마을이 살아 있는 학교’ 임을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안양시 정다운 골목마을 사례도 진한 감동이었다. 온 마을이 배움터가 되는 마을학교를 일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평범함 속에 숨겨진 재능, 숨어 있던 생활 속 달인과 고수들을 발굴하여 배움을 통해 마을 사람들 모두와 나누려는 공동체적 지혜가 담겨 있었다. 그리하여 ‘지훈 할매의 된장학교 고추장 스쿨’ 등등 힘들게 살아가는 좁디 좁은 골목에 마을학교가 차려지고 골목안 사람들이 선생님이 되어 삶 속에서 체득한 생활 비법들이 즐거움으로 전수되고 있었다. ‘골목표 된장 만들기 학교’, ‘할매표 고추장 담그기 학교’ ‘정 선생의 오카리나 스쿨’ 등 눈물겨운 생생한 삶 속 배움이야기들이 마을 곳곳에서 진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골목이 어느새 세상 속 대단한 학교로 변신한 놀라운 현장이었다. 지면의 제약으로 무수히 많은 그 대단한 사례들을 일일히 나눌 수 없음이 안타깝다. 살아있는 마을의 학습공동체 현장들과, 그 곳을 소리 없이 이끄는 마을 코디네이터들과 리더들이 무한 존경스럽다. 평생을 배움과 가르침을 업으로 삼아 온 필자, 지금도 대학에서 많은 제자들을 키우는 평생교육 전공 교수인 필자가 일상학습의 위대함과 마을의 학습하는 사람들, 마을을 일궈 내는 사람들에게서 너무도 큰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그 곳이 내겐 ‘진정한 학교’였다. 최운실 아주대 교육대학원 교수 [2015.1.9 경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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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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